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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권도(1955)’ 무명(武名)에 대한 재고(再考):『청도(青濤)』를 중심으로

목적
해방 이전 당수와 공수의 무명(武名)을 배경으로 하여 해방 이후 태권도(1955)’ 무명에 대해서 고찰하고자 한다. 첫째, 1955년에 대통령의 택견강조를 기록상으로 확인하고 둘째, ‘당수도의 국기화와 개명에 관한 논의를 다루고 셋째, ‘태권도무명의 회의가 실린 신문 기사의 상세 출처를 밝히며 넷째, 기사 전문(全文)의 분석을 통해서 주요 인물들을 조명한다.

방법

해방 전후 무명에 관련된 신문자료를 중심으로 검토하였다. 특히, 그동안 미발굴되었던 청도관의 기관지 청도를 통하여 1955년에 청도관이 주도한 태권도무명을 집중적으로 살펴보았다.

결과

첫째, 1955121일에 대통령은 택견에 대해서 오랜 역사, 발 중심 기술의 특징, 민간인 보급을 강조하였다. 둘째, 청도관에서는 당수도의 국기화와 개명 논의가 전개되었다. 셋째, ‘태권도무명은 19551219일에 청도관 제1회 고문회의 공식적인 회의를 거쳤고, 회의 내용이 실린 신문 기사의 상세 출처는 195612일 자 청도(6)였다. 넷째, ‘태권도(1955)’ 무명에 있어서 청도관장 손덕성은 최홍희와의 토의 연구, 3인 소위원 등으로 주요한 역할을 담당했다.

결론

태권도(1955)’ 무명에 관해서는 그 당시 사료를 기반에 둔 역사 서술이 요구된다. 이렇듯청도를 통해서 파악한 1955년에 청도관과 손덕성의 활동을 전환점으로 삼아 태권도(1955)’ 무명에 대한 다각도의 논의가 지속되어야 하겠다.
 
 첨부파일
01 김주연, 김은정.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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